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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창1:6-8) #004

bible/Genesis|2016. 6. 30. 14:03


창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창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궁창은 현재의 대기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물의 덮개(창1:2 깊음)에 둘러쌓여 있던 땅, 그 땅을 드러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제 다른 작업을 하십니다. 바로 물과 물 사이에 대기권을 형성하시는 것이지요. 이제 거대한 물의 덮개는 대기권을 사이로 위의 물층과 아래의 물층으로 나뉘게 됩니다. 왜냐구요? 하나님이 나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창1:7) 이렇게 순종 잘 하는 만물의 모습은 지난 게시물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 안 보셨다면 지난 게시물 보러가기 


여담으로, 이 위의 물층은 노아 시대에 하늘의 창이 열리면서 땅으로 쏟아지는 물의 근원이 됩니다. 

이렇게 창조 기사에 나타나는 만물의 절대적 순종을 보면서 진정한 순종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창세기를 읽어나가면서 성공적인 성경읽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도 얼마 읽지 못한 성경이나, 성경을 읽으며 발견한 은혜는 이렇습니다. 
성경에는 3가지 중심 주제가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 점진성에 대해서는 이 게시물에서도 말씀드린 바가 있고, 계속해서 나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내 현재의 모습입니다. - 죄악이 가득하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관계가 없어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하는 모습이죠(눅 9:23, 개정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두 번째 주제는 이 내 모습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하신 대표적인 하나님의 일은 자신의 독생자를 찢어 죽이시고, 날 살리신 사역입니다(십자가) 
세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십자가 사역)을 통해 변화될 내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창세기 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점진적으로(더 구체적으로) 반복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66권의 이야기 속에 핵심은 죄된 나를 영화롭게 변화시켜가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이 성경의 주인공이요, 이 성경이 설명하는 당사자가 되시는 것입니다.(요 5:39, 개역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반응이 대략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내가 왜 죄인이야?' 반문하며 내 더러움을 비추는 빛을 오히려 떠나가고, 배척합니다(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나 영접하는 자들은 복된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당장 죄로 가득해 죽어가는 자아(롬 6:23, 개정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에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저사람은요?'하고 걸고 넘어지는 반응입니다. 
저는 전도하다 이런 말도 들어봤습니다. '그럼 예수 믿지 않고,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도 지옥 간건가요? 그렇다면 저도 지옥갈래요. 예수 안 믿을래요.'
자아가 현재 처한 상태가 어떤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마 3:10, 개정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그러나 실제 위급상황이 되면 우리는 정말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이 상황에서 내 선택이 상대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자신이 살기를 선택합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죽음이 확실하지 않은 이런 상황 - 나는 살아있고, 내 사랑했던 부모님은 이미 죽어있는 상황 - 이라면 의인인 척을 합니다. - 분명히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제 이야기 입니다. 다른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과정이며(하나님의 점진성을 생각해 보시길) 이 곳에서 맺고있는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의 관계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허락하신 교보재에 불과합니다(마 22:30, 개정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다소 패륜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예수님께서는 과정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심지어는 끊으라고까지 하십니다.(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땅에서도 우리는 성장을 통해 어려서 좋아하던 것을 유치하게 여기게 됩니다. 딱지, 장난감, 인형, ... 10년이 지나 이런것을 여전히 아끼며 행복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저런 것을 좋아했었지 하면서 피식 웃으면서 좋은 추억으로 지나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어릴 때 중히 여기던 무언가 쯤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정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을 둘로 나누신 것 자체도 날 위해 그리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고, 현재 진행 중인 창조의 역사가 바로 죄인인, 철저한 죄인인 나(우리)를 위한 창조임을 깨닫길 원합니다.

부모님이 씻겨 주시는게 아파서 도망다니는 어린 아이와 같이 도망다니지 말고, 나 때가 많습니다. 아프지만, 깨끗게 되길 원합니다 하고 당신 앞에 나오길 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관심이 오로지 우리에게,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벌레 같은 나, 죄로 가득한 나지만 내가 그런 사랑을 받는 자이구나를 깨달으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요 3:16, 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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